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윌리엄 팰런 (문단 편집) == 생애 == 1944년 12월 30일 [[뉴저지]] 이스트오렌지[* [[뉴어크]]와 바로 붙어있는 작은 동네다.]에서 태어났다. 1967년에 [[빌라노바 대학교]]를 졸업하면서 [[해군]] [[ROTC|학군단]]으로 임관했다. 항공 직별로 [[해군 항공대]]에서 근무하며 R[[A-5]]C, [[A-6]]E 등에서 동승근무자로 활동하였다. [[베트남전]]에 참전했고 전역할 때까지 착함 횟수 1,300회에 총 비행시간은 4,800시간이었다. [[해군참모차장]]과 [[미합중국 함대전력사령부|함대전력사령관]], [[미합중국 인도-태평양사령부|태평양사령관]]을 거쳐 [[존 아비자이드]] 육군대장의 후임으로 2007년 [[미합중국 중부사령부|중부사령관]]에 올랐다. 미 해군 역사상 4성제독이 4번째 보직을 수행하는 것은 토머스 무어 前 합참의장 이후 처음이었으며[* 역대 세번째는 [[마이크 멀린]] 前 합참의장.], 보통 지상전이 벌어지는 중동 전역을 담당하는 중부사령관에 육군 및 해병대가 아닌 해군 출신자가 보임된 것은 최초이자 현재까지 마지막 기록이다. 그의 휘하에는 이라크다국적군 사령관인 [[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]] [[장군]]이 있었다. 당시 미 [[네오콘]]들은 [[아프가니스탄]]과 [[이라크]]에 이어 [[이란]]을 공격대상으로 삼았는데 팰런은 이에 부정적이었다. 그래서 [[이란]]을 가리켜 별 거 아니라며 [[개미]]와 같다며 언제든 짓밟을 수 있으니 수뇌부들에게 이란과 전쟁을 하지 말고 협상을 하라고 강조했다.[* 이란을 별 거 아니라고 한 게 그의 진심이었는지 아니면 이란에 대한 전력 투사를 하지 말라며 우회적으로 네오콘들을 비판하는 돌려 말하는 수사였는지는 불명이다.] 이 일로 당시의 [[조지 워커 부시]] 행정부와 사이가 좋질 못 했다. 특히 [[에스콰이어(잡지)|에스콰이어]]에 조지 부시 행정부를 이란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인터뷰 등을 실은 게 문제가 되어 사임의 형태로 나가게 되었다. 말이 사임이지 사실상 [[경질]]이었다. [[버락 오바마]] 행정부에서 [[롤링 스톤]]에서 수뇌부를 비판하는 기사를 실었다가 사임의 형태로 경질된 [[스탠리 매크리스털]]이 생각나는 대목이다. 결국 2008년에 군문을 나가게 되었다. 그가 나가게 되면서 [[마틴 뎀프시]]가 [[직무대행]]을 했다. 후임자는 [[데이비드 페트레이어스]]였다. 2017년에 북한(정부측)과 미국(민간인측)이 [[오슬로]]에서 가진 1.5트랙[* 양국의 정부관계자가 만나는 것과 대비해 양국의 민간인(주로 학자나 퇴직한 관료)끼리 만나는 것을 2트랙이라고 하는데, 한 국가의 민간인과 다른 국가의 관료가 만나는 건 중간이라고 1.5트랙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.] 회동에 참여했다. [[http://www.yonhapnews.co.kr/bulletin/2017/05/11/0200000000AKR20170511128400014.HTML|#]] [[분류:미국의 군인]][[분류:통합전투사령관]][[분류:1944년 출생]][[분류:사우스오렌지 출신 인물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